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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 인물관련

칸토동란(關東動亂) part4 : 도칸 암살 사건

關.東.動.亂.

- 오오타 도칸 암살 사건 -




1. 도비합체 후의 칸토


나가오 카게하루&아시카가 시게우지의 막부와의 화목으로 칸토에는 한동안 평화가 지속되었다. 이러한 평화의 최대 공로자는 당연히 오오타 도칸이었다. 도칸의 명성은 이제 우에스기가와 칸토의 수호신으로서 칸토 전역에 널리 울려 퍼지고 있었다.


호리고에 쿠보, 山内上杉顕正(야마노우치-우에스기 아키마사), 扇谷上杉定正(오기가야츠-우에스기 사다마사)의 3者는 이러한 도칸의 명성을 별로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시기에 막부는 아시카가 시게우지를 정식 칸토 쿠보로 임명하게 된다. 한편, 호리고에 쿠보는 칸토 쿠보의 자리에서 밀려나는 대신에 이즈 1국을 하사받았음에도, 이러한 인사조치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도칸의 주군 사다마사도 본래에는 칸토의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서 위와 같은 막부의 조치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으나, 그 인사의 주도권이 야마노우치-우에스기가에 있었던 것에 불만을 느껴 막부의 결정에 난색을 표하게 되었다.


그런데, 불만을 갖고 있던 兩者를 회유하는 설득역으로 오오타 도칸이 임명되었다. 일단 설득에는 성공하였지만, 이러한 불만은 쉽게 사라질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호리고에 쿠보는 오기가야츠-우에스기가 등의 反코가 쿠보 세력과 결탁하여 반격의 기회를 노리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코가 쿠보로서 실권을 회복한 아시카가 시게우지의 시의심(시기심과 의심)을 불러일으켜, 야마노우치-우에스기, 오기가야츠-우에스기, 코가 쿠보, 호리고에 쿠보 간에 활발한 물밑 접촉이 벌어지고 있었다.

 

4者 모두 오오타 도칸에 대해 경원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오직 칸토의 평화를 위해서 모든 조정을 도맡고 있던 오오타 도칸의 명성이 커지는 일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도칸을 타인에게 건네줄 바에는, 차라리 자신의 손으로 죽여버려라!」라는 의견도 은밀히 대두하고 있었다.

 

결국, 오오타 도칸은 주군에 대해 충의를 다한 결과, 비정한 암살이라는 댓가로 보답받게 되는 비극을 맞게 되는 것이다.




2. 도칸 암살


도칸의 명성이 커지는 것을 제일 꺼려했던 것은 역시 주군인 우에스기 사다마사였다.


사다마사가 분별없는 가신이 제기한 「도칸 반란설」(실은, 도칸의 활약으로 세력을 회복한 오기가야츠-우에스기가를 쫓아버리기 위한 야마노우치-우에스기가가 파놓은 함정이었다고도 함)을 믿은 결과, 비극이 일어나 버렸다.


1486년 7월26일, 사가미의 糟屋(카스야)를 방문하고 있던 오오타 도칸은 목욕 중에 주군 사다마사가 보낸 자객에게 습격을 당하여 절명하였다.

 

오오타 도칸이 죽음 직전에「주가는 끝장이야!(當方滅亡!)」라며 절규했다는 전설은 너무도 유명하다.


칸토의 수호신적인 존재였던 오오타 도칸의 암살은 4者간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벌어진 사건이었지만, 정작 그 암살사건은 兩우에스기가의 몰락과 호리고에 쿠보 아시카가 마사토모의 죽음이라는 전대미문의 쟁란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와중에 또 하나의 괴물이 칸토에 등장하게 된다. 



그 이름은, 北條早雲(호죠 소운)......




● 출처 : http://www11.ocn.ne.jp/~baronh/rekisi/doukan/doukanansatu.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