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 茶山 丁若鏞 1762∼1836 영조 38∼헌종 2 ) 조선 후기 실학자자는 미용(美鏞)송보(頌甫) 호는 다산(茶山)사암(俟庵) 당호는 여유당(與猶堂) 본관 나주(羅州). 1804년 유배지 강경에서 쓰셨다는 시조 '독소(獨笑)'입니다. 有粟無人食 (유속무인식) 양식 많은 집은 자식이 귀하고 多男必患飢 (다남필환기) 아들 많은 집엔 굶주림이 있으며, 達官必?愚 (달관필준우)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才者無所施 (재자무소시) 재주 있는 인재는 재주 펼 길 없다. 家室少完福 (가실소완복) 완전한 복을 갖춘 집 드물고, 至道常陵遲 (지도상릉지) 지극한 도는 늘상 쇠퇴하기 마련이며, 翁嗇子每蕩 (옹색자매탕) 아비가 절약하면 아들은 방탕하고, 婦慧郞必癡 (부혜랑필치)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바보..
세종(世宗, 1397년 음력 4월 10일(양력 5월 15일) ~ 1450년 음력 2월 17일(양력 4월 8일), 재위 1418년 ~ 1450년)은 조선의 제4대 왕이다. 성은 이(李), 휘는 도(祹), 자는 원정(元正)이다. 사후 묘호는 세종(世宗), 시호는 장헌대왕(莊憲大王)으로, 정식 시호는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다. 태종과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이며, 비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沈溫)의 딸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이다. 세종대왕은 재위 기간 동안 국방과 과학 및 경제, 예술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찬란한 업적을 많이 남겨 위대한 성군(聖君)으로 추앙받고 있다. 세종대왕은 3년간의 연구 끝에 1443년 한글을 창제했고, 오늘날 10월 9일은 한글날로 정해졌다..
1776년, 50년 넘게 조선을 다스렸던 영조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그 뒤를 이어 세손이 왕위에 오릅니다. 11살의 어린 나이에 당쟁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고, 자신도 수 없는 암살 위협과 폐위를 요청하는 상소 속에서 몸을 낮추며 살아야 했던 그는, 수 많은 고난 끝에 맞이한 즉위식 당일, 적으로 가득한 빈전 문 앞에서 그 동안 가슴 속에 담아왔던 한 맺힌 말을 토해냅니다.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정조(正祖, 1752년 음력 9월 22일 ~ 1800년 음력 6월 28일)는 조선의 제22대 임금이다. 휘는 산(祘), 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이다. 재위기간 중 중앙집권화를 위한 노력에 치중하였으며, 친위부대인 장용영의 창설과 자신의 저서 홍재전서를 비롯한 문집과 법전의 재간행, 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