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케다씨 가신단의 구성도


가신단
 
  전국최강의 타케다군단 - 그 무적의 메카니즘은 타케다 신겐의 명 지휘에 따라 움직였던 세상에 이름 높은 "타케다 24장(將)"을 시작으로 알려진 강력 가신단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말 중에 옛부터 이야기되는 것이 있는데, [용장밑에 약졸은 없다]라는 것이다. 용장 신겐이 조직했던 타케다 가신단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에선 그 가신단의 구성과 가신단에 대한 신겐의 권력침투책을 중심적으로 보여줄 생각이다.
  타케다 가신단의 구성은 상당히 복잡한데, [코요군칸(甲陽軍鑑)]의 [타케다 호쇼인 신겐공 미요소닌즈우노고토(武田 法性院 信玄公 御代  人數之事)]라고 기록된 것에 의해 어느 정도 정확히 재현할 수 있었다.
 
  가신단의 유형분류(類型分類)의 방법은 연구자에 의해 세부적으로 다소 달라지는데, 여기서는 사정상 크게 3가지의 그룹으로 나누어 이야기을 진행해 나가겠다. 지키신(直臣團), 사키카타슈(先方衆), 쿠니슈(國衆)의 3가지이다.
 
 
직신단(直臣團)
 
  지키신 - 말하자면 직신단은 여기서 고신루이슈(御親類衆), 고후다이가로슈(御譜代家老衆), 아시가루타이쇼슈(足輕隊將衆), 하타모토(旗本), 시요야쿠닌(諸役人) 등으로 분류된다.
 
  고신루이슈 - 어친류중은 문자 그대로 신겐의 친인척들이 버티고 있는 최중신층(最重臣層)으로 사회조직으로 치면 부사장(副社長)에서 전무(專務), 상무(常務) 에 취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신겐의 만년시대의 무장의 이름과 휘하 기마수를 기록하면 다음과 같다.
 
타케다 노부토요(武田信豊) (조카) - 200기(騎)
타케다 노부카도(武田信廉) (동생) -  80기
타케다 가쓰요리(武田勝賴) (넷째아들) - 200기
이치죠 노부타쓰(一條信龍) (동생) - 200기
          노부자네(河   信實) (동생) - 15기
타케다 사에몽(武田左衛門) (서자?) - 100기
니시나 모리노부(仁科盛信) (다섯째아들) - 100기
모치쯔키 마사요리(望月昌賴) (조카) - 60기
카쯔라야마 노부사다(葛山信貞) (여섯째아들) - 120기
이타가키 노부야스(板垣信安) - 120기
키소 요시마사(木曾義昌) (사위) - 200기
아나야마 노부키미(穴山信君) (사위) - 200기
 
이중에 이타가키 노부야스는 선조가 같은 먼 친척이고, 그 외 나머지는 아들, 동생, 조카, 사위 등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신겐과 가장 가까운 혈연자를 중요시했다고 생각되어 진다.
 
 

이제 어친류중 다음의 중신층이 바로 고후다이가로슈인데, 현대풍으로 바꿔 맡을 수 있는 직장은 부장(部長)클래스이다. 곧바로 신겐 만년시기의 무장의 이름과 기마수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바바 노부후사(馬場信房) - 120기
나이토 마사토요(內藤昌豊) - 250기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縣昌景) - 300기
코사카 마사노부(高坂昌信) - 450기
오야마다 노부시게(小山田信茂) - 200기
아마리 마사타다(甘利昌忠) - 100기
쿠리하라 아키후유(栗原詮冬) - 100기
이마후쿠 죠칸(今福淨  齊) - 70기
쯔치야 마사쓰구(土屋昌次) - 100기
아키야마 노부토모(秋山信友) - 50기
하라 마사타네(原昌胤) - 120기
오야마다 마사유키(小山田昌行) - 70기
아토베 카쓰스케(跡部勝資) - 300기
아사리 노부타네(淺利信種) - 120기
코마이 마사나오(駒井昌直) - 55기
코미야마 마사토모(小宮山昌友) - 30기
아토베 카쓰타다(跡部勝忠) - 50기
 
  여기서 "타케다 24장" 에 열거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어친류중, 어보대가로중 클래스에 있다. 물론 "타케다 24장" 이라는 것은 상징적인 표현 일뿐, 동시기에 활약했다는 것은 알 수 없었고, 멤버에도 차이가 있었으나, 그래도 지략, 무용에 걸출한 가신단의 중추를 맡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점령지의 성주와 성주대리(城代), 주요 행정 관료을 맡아보았던 이들은 거의 대부분 이 클래스의 무장들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직신단의 아시가루타이쇼는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아시가루 부대의 부대장들이고, 하타모토, 시요야쿠닌은 신겐의 측근들로 행정에 투입되었던 사람들이다.
 
  아시가루 대장중은 말하자면 실전부대장으로써 대단한 무용을 지닌 인재들로 이루어져 있다. [코요군칸] 에서는 요코타 야스카게(橫田康景 - 기마 30기, 아시가루 100명 지휘)을 시작으로 12명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신겐의 숙적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의 가신으로 있다가 타케다측으로 돌아선 오쿠마 토모히데(大熊朝秀)의 아들 나가히데(長秀 - 기마 30기, 아시가루 75인 지휘)등의 이름도 보여, 신겐이 넓게 인재등용을 하였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야기 중에 앞에서 얘기한 후다이가로중에 이름을 열거한 바바 노부후사, 코사카 마사노부(원래 이름은 토라쯔나(虎綱)들도 인재등용조(組)이다. 바바는 무카와슈(武川衆;후에 설명) 출신이고, 신겐의 측근중에 측근이었던 코사카는 이사와(石和)의 농민출신이었다.
  신겐은 우수한 인재을 보면 가문과 출신에는 관계없이 대발탁을 했었다. 이것이 바로 타케다 가신단의 최강이 되었던 비밀이었다고 생각되어진다.
 
 
이 인재등용책과 동시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요리오야(寄親), 요리코(寄子) 제도이다. 어친류중, 어보대가로중, 족경대장중들의 직신을 상급가신인 요리오야로 하고,그 아래에 하급가신단을 요리코로써 배치하는 제도다.  요리코는 동심중(同心衆)이라 불리며, 재지(在地)의 묘슈(名主;전국시대 지방향촌의 우두머리 지금의 면장이나 통장같은 성격.)층이 이 멤버에 속하였고, 그들은 자신들의 밑에 마타히칸(   被官)을 따르게 하였다.
 
  평상시에는 동심중은 농지를 경영, 히칸은 경작에 종사하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히칸은 직속의 동심중을 따르고, 동심중(요리코)은 곧바로 직속의 요리오야을 따라 군역에 따랐다.  말하자면 세로(縱)의 절대 복종적 관계를 맺어 신겐을 정점으로 직속가신단 ->동심중 -> 피관 으로 불리는 완벽한 권력 구조을 쌓았다.
 
  그래도 요리오야의 세력 확대을 방지하는 동시에 요리코의 도당화(徒黨化) 을 방지하기 위해 한마을 전체의 요리코를 한명의 요리오야에게 맡기지는 않고, 여러 마을의 요리코을 모아 종속시킴으로써 이를 미리 방지하는 방침을 취했다. 참으로 교묘한 지배체제라 아닐 수 없다.
 
 
선방중(先方衆)
 
  이제 다음 2번째로 주목할 그룹은 사키카타슈이다. 이들을 표현하면 새로운 점령지의 무사집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겐의 지배지는 본국이외에 시나노(信濃), 서 코우즈케(西上野), 스루가(駿河), 토오토미(遠江), 미카와(三河), 미노(美濃), 히다(飛  ), 엣츄(越中)의 8개국에 이른다. 그 정복과정중에 군문(軍門)에 항복했던 적의 장병을 가신단의 일원으로 휘하에 넣어 조직한 것이 바로 선방중인 것이다.
  선방중은 신겐의 직참중(直參衆;측근들)은 아니었으나 병력은 많을수록 부족함이 없는 전국시대이기에 그래도 이 부류의 장병부대는 위험도가 높은 최전선에 배치되는 것이 당시의 전법이기에 가볍게 볼수 없는 전투 집단이었다. 기록에 남아 있는 선방중과 사람수을 열거하자면
시나노 선방중 - 60명
서 코우즈케 선방중 - 14명
스루가 선방중 - 9명
토오토미, 미카와 선방중 - 4명
엣츄 선방중 - 2명
무사시(武藏) 선방중 - 2명
히다 선방중 - 1명
 
등이 기록되어져 있었다.  물론 이들 인원수는 일족 히칸을 지배하에 둔 호족 클래스의 무장수를 표현한 것이기에 만만치 않은 전투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중에서 서 코우즈케의 오바타 카즈사 노스케(小幡 上總介)는 500기, 시나노의 사나다 겐타자에몽(眞田 源太左衛門)은 150기, 스루가의 아사히나 스루가 노카미(朝比奈 駿河守)는 같은 150기 등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선방중을 신겐의 가신단에 조직해 넣었다고는 해도 그래도 적의 무장. 거기에 다수의 부하와 영지를 장악한 상태로 신겐의 막하에 들어온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언제 반기를 들고 일어날지 모르는 상당히 위험한 도구였다.
  그래서 신겐은 지배 구조을 강력하게 굳히기 위해서 여러 기청문(起請文;서약서)을 제출하게 하였다. 그래서 모두들 신겐에게 충절을 다할 것을 맹세케 하였다. 앞에 말한것 처럼 신겐은 자신의 권력을 말단에까지 침투시킬 수 있는 요리오야와 요리쿄 제도란 지배 체제을 이용했다.
 
  그러나 선방중에까지 이 제도을 감행하게 된다면 가신단이 거대화되어 내부붕괴라는 위험요소가 침투할 수 있었다. 기청문은 이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가신단을 통솔 관리하는데 있어 가장 교묘한 정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국중(國衆)
 
  자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그룹인 국중은 말하자면 변경지역에 토착화된 무사집단을 일컫는 말이다.  평상시엔 농림업에 종사하다가 문제가 일어나면 국경경비을 맡는게 주 임무였다.
  후지산 북부의 쿠이쯔시키슈(九一色衆), 서쪽의 우미슈(海衆), 하치케타케(八ケ岳)의 쯔카네슈(津金衆), 카마나시카와(釜無川) 상류지역의 무카와슈, 오오슈(小尾衆), 미타케(御岳) 산기슭의 미타케슈등이 그들이며, 시나노에도 산츄슈(山中衆), 기타카타슈(北方衆), 노자와슈(野澤衆), 운노슈(海野衆), 카쯔라야마슈(葛山衆)등이 웅거해 있다.
 
  이들 무리는 집단촌락 단위의 무사집단이기에,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쿠이쯔시키슈는 16기, 미타케슈는 22기 정도였다. 대부분 소규모이지만 단결력은 강해 전투력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기에 국경경비라는 중요한 임무을 맡겨 놓았고, 신겐은 재빨리 기청문을 제출케 하여 지배력 강화에 힘을 기울였다.
 
  이제 육상부대는 끝났으니 카이조쿠슈(海賊衆)을 보자. 현대의 해군에 해당하는 그들은 신겐의 만년에 편성되었기에 신겐 시대에는 실전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이상으로 신겐의 가신단의 구성을 끝마친다.
 
  이들 가동 총병력은 얼마로 볼수 있는가는 [코요군칸]에서는 총 기마수 9121기 , 신겐 직속의 하타모토 아시가루 884명, 기친에 속한 아시가루 5489명, 합계 51,978명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기마 평균 1명당 주종을 5명으로 볼 때 나오는 숫자로 기마주종을 3-4명으로 산출하는 경우도 있기에, 이를 3명을 기준으로 하면 총병력은 33,738명이 된다.
 
  이것을 보더라도 약 3만 3천에서 5만 2천이 동원 가능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대군세에 타케다군은 실전경험이 풍부했기에 한명 한명이 우수한 전투원들이었다. 이들 정예 가신단이 버티는 타케다 가신단은 말 그대로 전국 최강의 군대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