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경력


1888년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하리에서 출생

1902년 간재(艮齋) 전우(田愚) 문하에서 성리학 배움

1906년 순창에서 최익현(崔益鉉)의 의병에 가담함

1919년 부산지법 밀양지원 판사

1920년 변호사 자격 취득, 항일사건 1백여건 변론

1924년 조선변호사협 이사장

1930년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장

1946년 미군정 사법부장 취임

1948년 초대(初代) 대법원장 취임

1957년 대법원장대법원장 정년 퇴임

1963년 민정당, 국민의 당 대표최고위원

1964년 76세로 별세


상훈


1962년 문화훈장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일화

1. 1952년 부산 정치 파동 직후 대법관들에게 “폭군적인 집권자가, 마치 정당한 법에 의거한 행동인 것처럼 형식을 취해 입법기관을 강요하거나 국민의 의사에 따르는 것처럼 조작하는 수법은 민주 법치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를 억제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사법부의 독립뿐이다.”라고 강조


2. 그의 사법권 독립에 대한 신념이 얼마나 확고했던가는 이에 대한 견해 차로 말미암아 일어난 이승만 대통령과의 마찰로 인하여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는 지병이 도져 한국 전쟁 때 다쳤던 한쪽 다리를 절단하는 아픔을 겪었다. 대수술을 받고 병석에 누운 그에게 이승만은 사표를 종용했지만, 그는 거부하며 응하지 않으며 의족을 짚고 등원(登院)할 만큼 강직한 성품이었다. 어느 대법관 출신 인사는 의족에 의지한 채 “지팡이를 짚고 한쪽으로 기운 그의 모습은 병들기 시작한 사법부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안타까워했다.


3. 한번은 이승만이 법무부 장관에게 “요즘 헌법 잘 계시는가?”라고 물었는데, 장관이 말을 못 알아듣자 이승만은 재차 “대법원에 헌법 한 분 계시지 않느냐?”고 물었다는 일화가 있다.